무당의 집 오성산 !! - 흑운명월
민초
2023-04-2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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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오성산(五聖山)은 교단(敎團)이 아니라, 무당(無黨)의 집입니다.
어느 도생님이 “오성산 교단은 왜 분파되었을까요? 라고 질문을 하셨다.
이 도생님의 말씀의 요지를 알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질문 자체가 모순(矛盾)으로 보입니다.
첫째로 오성산(五聖山)은 교단(敎團)이 아닙니다.
후비님은 교명(敎名)을 붙인 적이 없으십니다
또 성포(聖圃) 고민환 종도님 또한 교명(敎名)을 붙이 적이 없습니다.
지금 오성산(五聖山)은 교명(敎名)도 없고, 00 조직(組織), 00 직책(職責)이 보직(補職), 품계(品階)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조그만 친목회(親睦會)도 이름이 있는데, 교명(敎名)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선도신정경>에서,
어느 때 도인(道人)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교명(敎名)이 없으니 포교를 할 때에 무어라 할 말이 없더라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교명(敎名)을 지을 것이 뭐 있으리요 그러니 그냥 그대로 선(仙)이라고만 말하라 하시더라 전하니라.
후비님은 교명을 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천지 어머니 말씀을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성산 교단“이란 명칭은 교명(敎名)이 아니라 세간(世間)에서 붙일 이름이 없어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일명, 최초의 교단, 태을교, 훔치교라는 교명(敎名)이 아니라 학술적, 학문적 입장에서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범증산교사>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범증산교사>에서,
고부인(高夫人)이 신해(辛亥 1911)년 9월에 종도들을 소집하여 교단을 창설할 때 뚜렷한 교명(敎名)을 제시한 바 없지만 그 교도(敎徒)들이 태을주(太乙呪)를 읽는 교단이라는 뜻에서 세간(世間)에서 태을교(太乙敎)라 부르게 되었다.
후일에는 여기서 갈라져나간 교단이나 이와 관련없이 다른 종도들과 그 문인(門人)들이 세운 교단까지도 모두 태을교(太乙敎)라고 불러서 그 당시의 신문이나 책자(冊子)에 그렇게 일컬어 왔는데 고부인이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서 창설하고 주재(主宰)했던 교단을 필자는 특별히 원태을교(原太乙敎)라 불러 태을교라는 교명(敎名)으로 불리워졌던 다른 교단과 구별하고자 한다.
<범증산교사>에서 홍교수님은” 필자는 특별히 원태을교(原太乙敎)라 불러“라고 하였습니다.
원태을교라는 교명은 홍교수님이 붙이신 이름이고, 후비님께서 친히 교명(敎名)을 붙인바 없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곳 밴드이름은 ”천지 성령이 계신 오성산 도장"입니다.
저는 ”오성산 도장“이란 이름도 공식적인 이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붙일 이름이 없기 때문 그냥 오성산(五聖山) 속에 도장이 있기 때문에 오성산 도장이라 부르는 것일 뿐입니다.
제가 오성산(五聖山)을 처음 방문했을 때 오성산 도생님들은 군산 성산(聖山)면 성덕(聖德)리에 성덕(聖德)마을에 있기 때문에 지명(地名)에 빗대어 성덕가(聖德家)라는 이름을 더 많이 쓰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오성산 도장이란 이름도 거창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초막(草幕)에서 성인(聖人)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초막의 성인(聖人)은 상제(上帝)님과 후비(后妃)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후비님은 ”성인(聖人)이 나오는데 도덕군자(道德君子)도 따라서 나오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성산에는 참진(眞)자 모양,모습영(影)자로 오성산 진영(眞影)에는 두 성령(聖靈)이 임어(臨御)하고 계십니다.
두 분의 성령(聖靈)의 기운으로 그 두 분 진영 밑에서, 감화(感化)되고 개심(改心)하는 도덕군자(道德君子)들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비님이 정읍(井邑) 대흥(大興)리에서 조정리에 가셨을 때도, 교명(敎名)이 없었고, 정읍 왕심리(旺尋里)에 보천교(普天敎) 교인(敎人) 일만(一萬) 명(名)을 구휼(救恤) 할 때도 교명(敎名)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선화(仙化)하신 오성산(五聖山)에 오실 때도 교명이 없었습니다.
후비님 선화 후 고민환(高旻煥) 종도님이 교명(敎名)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둘째로 ”분파“가 되었다는 이 또한 잘못입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오성산(五聖山)은 교명(敎名)이 아닙니다,
더구나 교단(敎團)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단지 제가 앞서 올릴 글 중에서 무당(無黨)에 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오성산 교단이 아니라 무당(無黨)의 집에 가깝습니다.
혹은 오성산(五聖山)에는 후비님을 믿는 도생님들은 한 곳 성덕가(聖德家)에만 있습니다.
두 곳, 세 곳이 없습니다.
이 질문은 ”후비님 사후 후비님을 믿는 종도님들이 분파되지 않았냐? 라고 질문을 수정하시는 곳이 더 정확할 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답변은 오성산(五聖山)에는 성덕가(聖德家) 한 곳 뿐이었고, 삼례, 종남산, 등에 몇 군데 있었습니다.
지금은 남은 곳은 오성산(五聖山)과, 삼례(三禮)가 있는데, 삼례 도장은 거의 한 집안만 정도만 남았습니다.
제가 삼례 도장를 방문하여 그 역사를 들어보니. 이용기 종도님도 교명(敎名)의 흔적(痕迹)이 전혀 없었습니다.
후비님의 이용기 종도님 역시 존경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상제님 종도님과 후비님 종도
들은 증산(增産:포교, 포덕)하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상제님 종도님들은 증산(增産)을 많이 하기 위하여 거창한 교명(敎名)을 붙였습니다.
후비님 종도님들은 오성산 뿐 만 아니라 다른 삼례, 종남산 등 교명(敎名)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동화교수양소라”는 간판을 걸었다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후비님이 조정리에 계실 때에는 전국을 15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지금의 이남(以南)뿐만 아니라 이북(以北)인 평안도 황해도 등에도 도장이 있었습니다.
후비님 사후 분파했던 것은 기존(旣存) 기반(基盤)의 연장선(延長線)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후비님 사후(死後) 초기(初期)에는 오성산을 중심으로 서로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후비님을 따르는 종도님을 하나 둘 저세상으로 가시게 되니, 서로 지역적으로 단절(斷切)이 되고, 교류가 끊기게 되니 오성산을 제외하고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도 힘든 상항이 되었습니다.
후비님을 따르는 종도님들은, 상제님의 종도님들과는 달랐습니다.
상제님 종도님들은 교명(敎名)을 짓고,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니 하며,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기도 하고, 거기에서 분파된 교단들은 더 심했습니다.
상제님 종도님으로부터 분파한 교단을 보면,
지금 상제님을 믿는 큰 종단이 서울과 대전에 있는데, 거창한 교명이 있습니다.
교명뿐만 아니라 집도 훌륭합니다.
교단의 재산도 억대(億臺) 조대(兆臺)의 재산이 있습니다.
그 예로, 서울과 대전 기반(基盤)의 신도들을 보십시오.
여기 이 “~오성산 도장" 밴드 안에서 서울교단, 대전교단을 믿다가 나오신 분 중에 그 교(敎) 때문에 잘되신 분이 계신가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단언(斷言)합니다
후비님 종도님들 중에 자신을 교명(敎名)을 짖고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신 분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후비님을 따르는 종도님들을 무당(無黨)을 내세우셨습니다.
이당(黨) 저당(黨) 다 버리고 무당(無黨)에 집에 빌어야 살리라 하셨습니다.
고민환 종도님이 교단 창설을 하지 않는 이유를 추측해보면
첫째로 그분은 때를 알았다고 보여집니다.
둘째로 무당(無黨)해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선정원경>에 후비님의 격이 무당위(無黨位)라고 되어있습니다.
고민환 종도님이 어던 분이었는지는 후비님 말씀에는 율곡(栗谷)의 후신(後身)이라 하셨습니다.
율곡은 10만양병설을 주장하고, 이순신에게는 두보의 시(詩)를 천 번 읽으라 하신 분입니다.
역사 속에서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대한민국 지폐(紙幣) 5,000원의 모델이시기도 한 위인(偉人)이기고 합니다.
율곡은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벼슬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분이 차생(次生)에서 카리스마가 없었던 분이되었을까요?
고민환 종도님은 때를 아셨던 분이었고, 또 후비님의 가르침에 충실에 따랐을 뿐이라 보이지 않는가요?
https://band.us/band/81744278/post/882
오성산 도장 밴드
어느 도생님이 “오성산 교단은 왜 분파되었을까요? 라고 질문을 하셨다.
이 도생님의 말씀의 요지를 알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질문 자체가 모순(矛盾)으로 보입니다.
첫째로 오성산(五聖山)은 교단(敎團)이 아닙니다.
후비님은 교명(敎名)을 붙인 적이 없으십니다
또 성포(聖圃) 고민환 종도님 또한 교명(敎名)을 붙이 적이 없습니다.
지금 오성산(五聖山)은 교명(敎名)도 없고, 00 조직(組織), 00 직책(職責)이 보직(補職), 품계(品階)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조그만 친목회(親睦會)도 이름이 있는데, 교명(敎名)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선도신정경>에서,
어느 때 도인(道人)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교명(敎名)이 없으니 포교를 할 때에 무어라 할 말이 없더라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교명(敎名)을 지을 것이 뭐 있으리요 그러니 그냥 그대로 선(仙)이라고만 말하라 하시더라 전하니라.
후비님은 교명을 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천지 어머니 말씀을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성산 교단“이란 명칭은 교명(敎名)이 아니라 세간(世間)에서 붙일 이름이 없어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일명, 최초의 교단, 태을교, 훔치교라는 교명(敎名)이 아니라 학술적, 학문적 입장에서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범증산교사>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범증산교사>에서,
고부인(高夫人)이 신해(辛亥 1911)년 9월에 종도들을 소집하여 교단을 창설할 때 뚜렷한 교명(敎名)을 제시한 바 없지만 그 교도(敎徒)들이 태을주(太乙呪)를 읽는 교단이라는 뜻에서 세간(世間)에서 태을교(太乙敎)라 부르게 되었다.
후일에는 여기서 갈라져나간 교단이나 이와 관련없이 다른 종도들과 그 문인(門人)들이 세운 교단까지도 모두 태을교(太乙敎)라고 불러서 그 당시의 신문이나 책자(冊子)에 그렇게 일컬어 왔는데 고부인이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서 창설하고 주재(主宰)했던 교단을 필자는 특별히 원태을교(原太乙敎)라 불러 태을교라는 교명(敎名)으로 불리워졌던 다른 교단과 구별하고자 한다.
<범증산교사>에서 홍교수님은” 필자는 특별히 원태을교(原太乙敎)라 불러“라고 하였습니다.
원태을교라는 교명은 홍교수님이 붙이신 이름이고, 후비님께서 친히 교명(敎名)을 붙인바 없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곳 밴드이름은 ”천지 성령이 계신 오성산 도장"입니다.
저는 ”오성산 도장“이란 이름도 공식적인 이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붙일 이름이 없기 때문 그냥 오성산(五聖山) 속에 도장이 있기 때문에 오성산 도장이라 부르는 것일 뿐입니다.
제가 오성산(五聖山)을 처음 방문했을 때 오성산 도생님들은 군산 성산(聖山)면 성덕(聖德)리에 성덕(聖德)마을에 있기 때문에 지명(地名)에 빗대어 성덕가(聖德家)라는 이름을 더 많이 쓰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오성산 도장이란 이름도 거창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초막(草幕)에서 성인(聖人)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초막의 성인(聖人)은 상제(上帝)님과 후비(后妃)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후비님은 ”성인(聖人)이 나오는데 도덕군자(道德君子)도 따라서 나오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성산에는 참진(眞)자 모양,모습영(影)자로 오성산 진영(眞影)에는 두 성령(聖靈)이 임어(臨御)하고 계십니다.
두 분의 성령(聖靈)의 기운으로 그 두 분 진영 밑에서, 감화(感化)되고 개심(改心)하는 도덕군자(道德君子)들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비님이 정읍(井邑) 대흥(大興)리에서 조정리에 가셨을 때도, 교명(敎名)이 없었고, 정읍 왕심리(旺尋里)에 보천교(普天敎) 교인(敎人) 일만(一萬) 명(名)을 구휼(救恤) 할 때도 교명(敎名)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선화(仙化)하신 오성산(五聖山)에 오실 때도 교명이 없었습니다.
후비님 선화 후 고민환(高旻煥) 종도님이 교명(敎名)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둘째로 ”분파“가 되었다는 이 또한 잘못입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오성산(五聖山)은 교명(敎名)이 아닙니다,
더구나 교단(敎團)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단지 제가 앞서 올릴 글 중에서 무당(無黨)에 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오성산 교단이 아니라 무당(無黨)의 집에 가깝습니다.
혹은 오성산(五聖山)에는 후비님을 믿는 도생님들은 한 곳 성덕가(聖德家)에만 있습니다.
두 곳, 세 곳이 없습니다.
이 질문은 ”후비님 사후 후비님을 믿는 종도님들이 분파되지 않았냐? 라고 질문을 수정하시는 곳이 더 정확할 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답변은 오성산(五聖山)에는 성덕가(聖德家) 한 곳 뿐이었고, 삼례, 종남산, 등에 몇 군데 있었습니다.
지금은 남은 곳은 오성산(五聖山)과, 삼례(三禮)가 있는데, 삼례 도장은 거의 한 집안만 정도만 남았습니다.
제가 삼례 도장를 방문하여 그 역사를 들어보니. 이용기 종도님도 교명(敎名)의 흔적(痕迹)이 전혀 없었습니다.
후비님의 이용기 종도님 역시 존경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상제님 종도님과 후비님 종도
들은 증산(增産:포교, 포덕)하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상제님 종도님들은 증산(增産)을 많이 하기 위하여 거창한 교명(敎名)을 붙였습니다.
후비님 종도님들은 오성산 뿐 만 아니라 다른 삼례, 종남산 등 교명(敎名)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동화교수양소라”는 간판을 걸었다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후비님이 조정리에 계실 때에는 전국을 15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지금의 이남(以南)뿐만 아니라 이북(以北)인 평안도 황해도 등에도 도장이 있었습니다.
후비님 사후 분파했던 것은 기존(旣存) 기반(基盤)의 연장선(延長線)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후비님 사후(死後) 초기(初期)에는 오성산을 중심으로 서로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후비님을 따르는 종도님을 하나 둘 저세상으로 가시게 되니, 서로 지역적으로 단절(斷切)이 되고, 교류가 끊기게 되니 오성산을 제외하고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도 힘든 상항이 되었습니다.
후비님을 따르는 종도님들은, 상제님의 종도님들과는 달랐습니다.
상제님 종도님들은 교명(敎名)을 짓고,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니 하며,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기도 하고, 거기에서 분파된 교단들은 더 심했습니다.
상제님 종도님으로부터 분파한 교단을 보면,
지금 상제님을 믿는 큰 종단이 서울과 대전에 있는데, 거창한 교명이 있습니다.
교명뿐만 아니라 집도 훌륭합니다.
교단의 재산도 억대(億臺) 조대(兆臺)의 재산이 있습니다.
그 예로, 서울과 대전 기반(基盤)의 신도들을 보십시오.
여기 이 “~오성산 도장" 밴드 안에서 서울교단, 대전교단을 믿다가 나오신 분 중에 그 교(敎) 때문에 잘되신 분이 계신가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단언(斷言)합니다
후비님 종도님들 중에 자신을 교명(敎名)을 짖고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신 분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후비님을 따르는 종도님들을 무당(無黨)을 내세우셨습니다.
이당(黨) 저당(黨) 다 버리고 무당(無黨)에 집에 빌어야 살리라 하셨습니다.
고민환 종도님이 교단 창설을 하지 않는 이유를 추측해보면
첫째로 그분은 때를 알았다고 보여집니다.
둘째로 무당(無黨)해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선정원경>에 후비님의 격이 무당위(無黨位)라고 되어있습니다.
고민환 종도님이 어던 분이었는지는 후비님 말씀에는 율곡(栗谷)의 후신(後身)이라 하셨습니다.
율곡은 10만양병설을 주장하고, 이순신에게는 두보의 시(詩)를 천 번 읽으라 하신 분입니다.
역사 속에서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대한민국 지폐(紙幣) 5,000원의 모델이시기도 한 위인(偉人)이기고 합니다.
율곡은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벼슬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분이 차생(次生)에서 카리스마가 없었던 분이되었을까요?
고민환 종도님은 때를 아셨던 분이었고, 또 후비님의 가르침에 충실에 따랐을 뿐이라 보이지 않는가요?
https://band.us/band/81744278/post/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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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장수나라님의 댓글
당대에 행하셨던 많은 일들 그리고 그분들의 노고와 변함없는 일관된 말씀과 행적들
우리들이 그 시대로 돌아가서 상제님 후비님 대도를 만난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했을까
정말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끼고 저절로 죄스러운 마음이 드네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있어요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또 지금은 모든 상제님의 도수가 하나로 뭉쳐져야 하는 때라고
고후비님, 고민환종도의 도수도 너무 중요하고 절대 빠질 수 없는 도수이지만
또 동시에 다른 많은 도수들과 하나 되어야만 한다고
그래서 정말 모두가 각각 훌륭한 도수와 역할이 있고 모두가 존중받아야 하는 단체, 조직이라고
호호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을까요?
민초님 글을 보니 다른 위치에 있지만 한 식구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도 수고하세요
좋은 글 감사해요.
민초님의 댓글의 댓글
오성산밴드 흑운명월 도생님과 대화를 나눠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