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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도란도란 선천의 상극(윈윈)의 이야기!

천지에 독음독양은 만사불성 이니..

증산천하
2019-07-11 22:31 4,975 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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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주신 것에 답글로 달기에는 한계가 있고 수 십 개의 댓글이 달림으로써 읽으시는 분들이 불편 하실 것 같아 좀 더 자세한 내용이라 새 공간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스치는 바람님의 댓글 스치는 바람 댓글의 댓글 작성일 19-07-11 00:42 그럼~~ <그 연을 끊지 않으시기 위해서 혼인 다음날 바로 데리고 가신 것 아니겠습니까!!> 라는 내용은 어떤 출처가 있나요??? 처음 듣는 내용이라 질문드립니다.^^
  상제의 마음은 그러한데.. 형렬은 그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강행했디는 말씀이네요 쩝...   결국 결혼을 한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결론은 어떻게 되나요??   데리고 가신 이후에 상제님의 어천이 이루어졌다면 보신 공사는 살아있는 것 아닌가요??
 
답변
김수부는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기유(己酉1909년)으로부터 2년뒤인 1911년 금구 둔산리에사는 최씨문중으로 출가 하는 날 초례청에서 병을 얻어 그 뒤 친가로 돌아와서 몇 칠 뒤인 9월28일 19세의 나이로 선화 하셨다.
법종교 김수부님 편입니다.
 
스치는 바람님의 댓글 스치는 바람 댓글의 댓글 작성일 19-07-11 00:33 대체로 긍정적인 말씀입니다.
고수부님은 원래 상제님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인간 세상과 연계된 신도의 수많은 존재들은 자신들의 꿈을 꿉니다.   여기서 본 50번의 간택에 저도 놀랐습니다.
숨겨진 고충이 많았구나 하구요~!!
하지만 정씨, 김씨 분도 사랑에 대해서는 순수한 꿈을 꾸십니다. 신도의 의도와는 다르게 참사랑의 결혼을 꿈 꿉니다.
현재 21세기에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수많은 선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19말~20초만 해도 그런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정씨, 김씨 여성의 마음을 누가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지요 ㅠ
그러 하기에 우리의 논의는 그저 역사속 글자에 파묻힌 오해의 역사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사의 엄중함은 피할 수가 없군요. 절대적이라는 판단은 피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
 
답변
‘내 일은 수 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천지(天地)에 독음독양(獨陰獨陽)은 만 사불성(萬事不成)이니’ 라고 하셨으며 천지공사 중에도 음양(陰陽)이 고르지 못하면 음양의 균형이 맞춘뒤에 공사를 보시기도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에 독음독양은 만사가 불성이라 하셨듯이 천지공사 기간중 세 분과 1:1 관계로 일음일양 관계를 유지 하시며 공사를 펴셨습니다.
 
1901~1904년 까지는 정씨대모님: 상제님 (일음일양)
 
이 기간에 화은당 선사님께서 탄생 하십니다
정씨 대모님과의 합덕하심으로 육기초 공사를 완성하게 될 법종교의 창건을 준비 하셨습니다.
 
1904~1907년 까지는 김수부님 월광묘향보살: 상제님 (일음일양)
 
이 기간에는 월광묘향보살님과 합덕으로 감결공사를 보십니다.
 
감결공사- 상제(上帝)께서 김사모(金師母)를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수부(首婦)로 임명하(1904년)신 다음,
훗날(1906년 병오) 수부(首婦)님 방(房)에서 첫 공사(公事)를 보실 새. 수부(首婦)님 나이는 만 십사세(十四歲)가 되신 때였는데 여성(女性)의 첫 경도(經度)가 나오는 때더라.
 상제(上帝) 가라사대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十五年)동안 정성을 드렸음은, 오늘 너의 진경(眞經)을 얻어서 공사(公事)를 보고자 함이니,
이 공사(公事)는 천지(天地)가 생인(生人)하여 용인(用人)하는 일이니라」 하시고 김수부(金首婦)의 경혈(經血)을 그릇에 받아서 공사문(公事文)에 「감결(甘結)」이라 쓰신 다음
 「선지포태(仙之胞胎) 불지양생(佛之養生) 유지욕대(儒之浴帶))」와 「관왕(冠旺) 도솔(兜率) 허무(虛無) 적멸(寂滅) 이조(以詔))」
열 글자에 경혈(經血)을 손 끝에 묻쳐서 점(點)을 찍으시니.. <나의 세상 龍華仙境이오면(李孝鎭)>
 
[ 김수부(金首婦) 십칠세(十七歲)가 되던 병오년(丙午年)에 김수부 방에서 공사(公事)를 보시며 천주 일러 가라사대 [장차(將次) 많은 사람을 내어 쓸 공사이므로 너의 월경(月經)을 받아서 쓰리니, 이 공사는 천지(天地) 생인(生人)하야 용인(用人)하는 일이라.]
 
1907년 늦가을부터~ 1909년 늦봄까지 고수부님 일광법륜보살: 상제님(일음일양)
 
이 기간에는 일광법륜보살님과 합덕하시어 일등무당공사를 보십니다.
일등무당공사는 고수부님께서 1911년 9월 20일에 도통을 받으시게 되는 공사로 화이트 샤머니즘 즉 마고여신이 반본 한다는 것을 반포 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수부님은 낙종을 맡으신 분이므로 화이트샤머니즘의 최고여신의 능력으로 낙종을 시작하셔야 하므로 도통을 받지 않고서는 낙종일은 불가능 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고수부님께서 도통을 받으시고 가장 먼저 하신 첫 말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 첫마디에 도통의 모든 함축적 이유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나는 낙종(落種)물을 맡으리니 그대는(차경석) 이종(移種)물을 맡으라 추수할 사람은 다시 있으리라’ 하였다.
 이로부터 부인(夫人)은 성령(聖靈)의 접응(接應)을 받아 한달동안 신정(神政)을 행하였다. (甑山敎 史 223쪽)
이로써 고수부님께서 일등무당이 되시어 낙종의 도운을 시작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1909년 음력6월 상제님 화천 하루전날 마지막 일음일양 합덕 공사를 하시는데 상상을 깨는 예식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고수부님이 아닌 김수부님(김말순)과 마지막을 함께 하심으로 세 분중 공사의 마무리를 짓는 분은 김수부님 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김수부님 월광묘향보살님:상제님(마지막 일음일양 합덕공사)
 
유월(六月) 이십삼일(二十三日) 오전(午前)에 여러 제자(弟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쁜지라. 너희들 중에 임술생(壬戌生)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 세우라.]
하시니 형렬(亨烈)이 대(對)하여 가로되 “수부(首婦)는 저의 딸로 들여 세우겠나이다.” 가라사대 [세수시키고, 빨은 옷을 갈아 입혀서 데려오라.] 하시니, 형렬(亨烈)이 명(命)하신 대로 하여 딸인 김말순(金末順)을 약방(藥房)으로 데려오니라.
 
 천주(天主) 제자(弟子)들로 하여금 약장(藥欌)을 방(房) 한가운데로 옮겨 놓게 하신 뒤에 형렬(亨烈)의 딸을 명(命)하시어 약장(藥欌) 주위(周圍)를 세 번 돌게 하신 뒤 그 옆에 서게 하시고, 경석(京石)을 명(命)하시어
 
「대시태조출세제왕장상방백수령창생점고후비소(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라는 글을 쓰게 하시니,경석(京石)이 받아씀에 후비소(后妃所)를 후비소(后妣所)라 썼거늘. 가라사대 [잘못 썼다.] 하시어 불사르시고 다시 쓰게 하신 후, 약장(藥欌)에 붙이게 하신 뒤에 가라사대
 [이것이 예식(禮式)이니, 너희들이 증인(證人)이 되라.]
하시고 형렬(亨烈)의 딸을 돌려보내신 다음에 경석(京石)으로 하여금 그 글을 거두어 불사르시니라.
 
  -기유(己酉)년 6월 23일 경자(庚子)일은 황극력법(皇極曆法)으로 계산하면 4월 초8일이다.- 이것은 정확한 계산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합니다.
 
고수부님께서 상제님과 함께 가장 높은高자리에 계셨습니다.
  혹은 여상제로 계십니다.
상식선에서 볼 때에도 드러나 있는 것이 판안이고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이 판밖 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 보면 드러나 있는 높은(高)   자리가 판밖이 아니라 그 반대의 낮은低 자리가 판밖이 되는 것입니다.   세 분의 수부님을 놓고 볼 때 고수부님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대모님께서도 법종교에서 존숭 받고 계시는데 김수부님은 현재 어떠하십니까!
지난 100여년의 세월 속에 김수부님은 어느 위치에 계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김수부님께서   함자 말순末順이라는 의미에 맞추어 제비산 끝자리(末)에 이장 되셨습니다.
 
높을 고의 반대어인 低 낮을 저를 파자하면 (본 글에 다 들어가지 않아 댓글로 이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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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5

증산천하님의 댓글

증산천하
2019-07-11 22:35
높을 고의 반대어인 低 낮을 저를 파자하면
 

땅저, 낮을저, 근본저氐에
 

사람인변(亻)이붙어
 

낮을 저低가 되었습니다.
 

결국 높을고高의 반대의 의미는 낮은사람低이라 되는 것입니다.
 

 

 

기금 세 분 중에서 가장 대접 받지 못하고 계신 수부님이 누구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서가장 낮은 수부님는 누구일지요!
 

고수부님과 김수부님은 미륵불의 양위 보처불로 대등하신 분으로 보아야 합니다.
 

두 분을 저는 과거에 일을 하셨냐 혹은 미래에 일을 하실 것이냐의 차이로 생각 하고 있습니다.
 

맥 脈 자에서 고기육 부수가 달월月에서 나왔습니다.
맥脈 자의 부수가 고기육月이 되기 전에 기원을 달월月로 보고 있으며 이것은 맥脈이
월광묘향보살(김수부님)과 무관 하지 않게 흐르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대두목과 종통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계속 말씀 드리는 것처럼 이것은 나의 것을 조금씩 내려놓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화합의 길로 나아가 보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쌍여궁은 어떤 시대라는 것인가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안됩니까??
단순히 마고시대를 쌍여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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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여궁님의 댓글
쌍여궁 작성일 19-07-11 00:42
처녀궁을 일명 쌍여궁이라 하는데,
 

이게 마고시대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마고가 짐세가 거의 끝날 무렵에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고 했죠.
 

황도12궁의 한 시대는 2000년의 기한인데....
 

대략 본문 내용 중에 다른 사람의 글을 가져다가 온 부분을
부도지를 보고 확인해보지 않고 인용한 것이 사실관계의 오류로.........
 

 

답변
멜기세덱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와 있고, 마고는 『부도지(符都誌)』와 중국의 여러 기록에 나와 있다고 한다. 인류역사의 시작을 12간지의 자(子)로 본다면, 이때에 해당하는 12궁 시대는 사자궁 시대이다. 사자궁 시대는 약 12000년 전으로, 멜기세덱과 마고시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의 시발을 사자궁 시대에서 시작하면, 9199년 전에 환국을 세운 환인천제의 시대는 거해궁 시대에 해당하고, 5898년 전에 신시를 세운 환웅천왕의 시대는 금우궁 시대에 해당하며, 4333년 전에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시대는 백양궁 시대에 해당한다. 현재는 쌍어궁 시대를 지나서 이제 막 보병궁 시대로 들어섰으므로. 현재에서 과거로 12궁 시대를 역추적하면 마고시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마고의 개천연대는 12000년~12500년 전 인 BC10000년~BC10500년 상달 3일로 잡아야 한다고 한다.
 

[출처] 민간전승 속의 마고할미|

증산천하님의 댓글의 댓글

증산천하
2019-07-11 22:38
스치는 바람님의 댓글
스치는 바람 댓글의 댓글 작성일 19-07-11 00:45
처녀궁을 일명 쌍여궁이라 하는데,
=>> '여' 자는 한자로 어떻게 되나요?
 

마고시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보아야 하는군요...
답변
 

쌍여궁님의 댓글
쌍여궁 댓글의 댓글 작성일 19-07-11 01:02
雙女宮
 
쌍에서 우(又)는 돕는다는 뜻으로 받든다는 의미이지
새추자가 또 하나 더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답변
재야사학자들이 쌍녀(雙女)의 해석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쌍녀(雙女)라는 문자를 분석해 보면, 쌍(雙)자는 새 ‘추’자가 겹쳐 있고, 밑에는 또 ‘우’자가 있다. 재야사학자들은 이는 새가 두 마리가 있는데, 여기에 또 한 마리가 더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따라서 새 세 마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새 세 마리를 마을 입구에 세운 솟대가 존재하며, 솟대에 앉은 새 세 마리는 '두 마리 새'에게 '한 마리 새'가 합류한 모양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문자로는 쌍여(雙女)를 의미하고, 이들은 영등바람을 타고 날아온 마고삼신을 상징하는 오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야사학자들은 쌍여궁시대를 바람을 타고 몰려오는 오리의 시대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솟대에 앉은 새들이 모두 오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리는 바로 삼신을 상징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마고삼신이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다는 의미와 연관시켰던 것이다.
 

[출처] 민간전승 속의 마고할미|
 

쌍에서 우(又)는 돕는다는 뜻으로 받든다는 의미라고 생각하신다 해도 여신을 상징하는 새를 돕거나 받든다는 뜻이니 큰 의미적으로는 상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돕고 또 돕는 상생을 했던 고대 시대에 또우자가 돕다라는 의미로도 쓰였던 것은 당연 한 것일겁니다
 

 스치는 바람님의 댓글
스치는 바람 댓글의 댓글 작성일 19-07-11 00:59
잠깐 인터넷을 두드려 보니
 

"세차운동에 의하여 지구에 사는 생물들이 멸망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이 마고와 멜키지덱이었다. 마고는 발해만에 있는 묘도군도에서 살아남았고, 멜키지덱은 유대의 땅에서 살아남았다.
 
마고에 대한 기록은 '부도지符都誌'에 실려 있고, 멜키지덱에 대한 기록은 '성경'의 창세기에 실려 있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고의 다른 기록에는 이 연원이 직녀와 연계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이 부분은 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멜기지덱은 아마 멜기세딕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멜기지덱의 세상은 유대와 이어지고 이는 기독교 원역사와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고는 직녀와 연계되고 이는 더 큰 복잡성을 말해줍니다.
왜냐면
직녀는 (동방에 비해) 서쪽국가들의(인도등 서쪽) 28수 개념과 연계되어 있고
또한 유대역사또한 서쪽 세상의 개념입니다,
 
곧 둘다 서쪽 세상과 관련된 주제입니다.
동방의 역사 속의 개념과는 다른 주제가 되는 군요.,
 
생각을 더 많이 해봐야 홥니다.
 

답변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마고지나'의 문명은 우리 최고의 조상인 '마고'에 의하여 시작되며, 그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이전에 해당한다고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성주제사를 동이의 조상인 마고에게 드리는 제사로 보고 그 유습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전해 온다고 본다.
한편 성주는 하늘에서는 직녀성이라고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직녀성은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 이전에는 지구 중력의 회전축을 관장하던 북극성의 지위에 있었던 별로 판단하고 마고시대, 즉 쌍녀궁(雙女宮)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직녀성이 북극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출처] 민간전승 속의 마고할미|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며, 이튿날 새벽에 비가 내리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비를 '눈물 흘리는 비', 곧 '쇄루우(灑淚雨)'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한대(漢代)의 괴담(怪談) 을 기록한 책인《재해기(齋諧記)》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7월 7일 저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졌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자연적인 현상에서 성립되었다. 즉 천문학상의 명칭으로 견우성(牽牛星)은 독수리별자리[鷲星座]의 알타이어(Altair)별이고, 직녀성(織女星)은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Wega)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원래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직녀성(織女星)은 28수 가운데 우수에 속하며 하늘에서 은하수의 서쪽 물가에 있다. 직녀는 천제(天帝)의 손녀로 베를 짜는 여성을 상징한다. 은하수 건너 동쪽에 있는 독수리자리의 하고성(河鼓星)과 서로 마주 보고 있어 견우와 직녀 전설이 형성되었다. 서양 별자리의 거문고자리에 속한다.
 
직녀성의 별 셋이 하늘에서 엮어내는 모양은 중앙의 밝은 별에서 두 다리가 뻗어 나온 모양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서는 직녀성이 천기성(天紀星)의 동쪽 끝, 천봉성(天棓星)의 동남쪽, 천진성(天津星)의 서쪽, 천시원(天市垣)의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은하수의 서쪽 물가이다. 이 지역은 서양 별자리의 거문고자리에 속하며 거문고자리의 알파별, 입실론별, 제타별이 직녀성을 이루고 있다.]
 

# 위 내용에 보면
‘한편 성주는 하늘에서는 직녀성이라고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직녀성은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 이전에는 지구 중력의 회전축을 관장하던 북극성의 지위에 있었던 별로 판단하고 마고시대, 즉 쌍녀궁(雙女宮)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직녀성이 북극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직녀성(織女星)은 28수 가운데 우수에 속하며 하늘에서 은하수의 서쪽 물가에 있다. 직녀는 천제(天帝)의 손녀로 베를 짜는 여성을 상징한다.’ 라고 설명 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보면 쌍여궁 마고시대의 여신이 직녀성과 북극성에 있는 여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스치는 바람님께서 아래와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직녀는 (동방에 비해) 서쪽국가들의(인도등 서쪽) 28수 개념과 연계되어 있고
또한 유대역사또한 서쪽 세상의 개념입니다,
 

곧 둘다 서쪽 세상과 관련된 주제입니다.
동방의 역사 속의 개념과는 다른 주제가 되는 군요., ”
 라고요.
 

직녀가 서쪽국가들의 28수 개념과 연계되어 있어서 서쪽 세상과 관련된 주제라고 하셨는데 28수는 고대 동아시아 전체에서 사용된 별자리입니다.
 

이십팔수(二十八宿)는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서 사용되어 온 황도와 천구의 적도 주변에 있는 28개의 별자리이다. 28수와 3원으로부터 하늘이 3개의 담과 나머지 28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위키백과]
해서 3원 28수라고 하지 않는지요.
 

 [천문분야론에 따르면, 직녀 성좌는 하늘을 열두 구역으로 나눈 십이성차(十二星次)의 성기(星紀)의 차에 속하는데, 서양 황도십이궁의 산양자리[磨羯宮]와 상응한다. 해가 하늘에서 성기의 차에 자리 잡고 있을 때는 십이진(十二辰)의 축(丑)의 방향에 해당하는데, 시절은 음력 11월이 된다. 하늘의 분야에 대응하는 땅의 분야는 십이주국(十二州國)의 오(吳)나라와 양주(揚州)이다.
 

직녀성은 베를 짜는 여자의 상을 본떠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삼은 것으로, 천제의 손녀 또는 천제의 딸이라고 하였다. 『사기』 「천관서」에서는 ‘천제의 손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진서』 「천문지」 이후로 ‘천제의 딸’로 바뀌었다.] -조선왕조 실록-

저는 별자리에 대해서 깊은 지식이 없습니다.
또한 마고시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글을 쓸 때에는 마고시대 삼신할매 세 수부님 삼위일체 이런것들이 먼저 영감으로 떠오릅니다.
물론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하더라도 이것들에 대해서 연결 지어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 그런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줄을 잇게 되고 계속해서 이끌림이 지속 됩니다.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혼자 “아하 그렇구나” 하거나 전율을 느끼거나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들을 말 할 필요는 없겠으나 상황이 글을 쓰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번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깊이 궁리하고 연구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영감에 의지하는 때가 많으므로 하나하나에 대해 전문지식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직접 공부 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는 경전이나 성구 말씀을 연구하고 따지는 성격이 아닙니다. 사실 크게 관심이나 흥미도 없습니다. 그 때 그때 필요에 의해 다시 짚어 보고 음미 하는 정도입니다. 열심히 보았던 것은 과거 옛날 한 때입니다.
 
제가 어느 순간 직녀와 마고와 서왕모에 대해 글을 쓸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는 마고삼신과 삼족오의 관계가 연결점이 있다는 것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마고삼신과 삼족오가 한 방향를 가르키고 있다는 내용이 벌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제님께서는 9년의 천지공사 기간동안 한 순간도 독음독양으로 계신 적이 없으십니다.
양으로 오신 상제님과 음으로 오신 세 분과(천지일월)의 합덕으로 공사를 보셨습니다,
일광법륜보살님과 월광 묘향보살님은 양위 보처불로서 대등한 관계이며 법종교 영대에 계신 정씨대모님은 부부동체이자 일체로서 天과天 천=천 정음정양의 상징자리에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지(地)의 자리는 인정상관님의 자리로서 인정상관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덕목이 있다면 타인의 생각을 여여히 바라봐 주는 여유로움과 상대의 생각은 저러하구나 하는 너그러움인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영감에 의한 글을 쓰는 쪽입니다. 맞다 틀리다를 일일이 따져 물으시지 말고 스스로 공부 해 보셨으면 합니다.
 
물론 제 말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력이 큰 교단의 입장에서 만든 성구만 가지고
틀리다라고만 하는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공부에 부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성불 하십시오_()_
모두 미륵불의 도를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스치는 바람님의 댓글의 댓글

스치는 바람
2019-07-15 15:16
증산천하님 애쓰셨네요 ^^* 특별히 제 댓글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감솨~~!
시간없어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

1. 스치는 바람 댓글의 댓글 작성일 19-07-11 00:42
그럼~~ <그 연을 끊지 않으시기 위해서 혼인 다음날 바로 데리고 가신 것 아니겠습니까!!> 라는 내용은 어떤 출처가 있나요???  =====>>> 이 부분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2. 직녀가 28수 개념에서 우수에 속한다는 기록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오래 전 보았던 서쪽국가(인도등 서쪽)의 28수에는 직녀성이 직접적으로
들아간다고 보았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제 기억이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 속한다는 개념과 직접 헤당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양해를

3. 부도지는 너무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하고 하지만, 제 경험상
==> 마고와 서왕모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며, 그 근원도 다른것으로 압니다.
또한 마고와 서왕모와 삼족오는 또 완전히 다른 별개의 시원에서 발원된 존재입니다.
괜히 섣부른 영감의 이끌림에 의해 부족한 사료들의 한계성을 넘으려는
불가피한 노력으로는 그 근본을 완전히 꿰뚫을 수 없는 측면이 있음을
깊이 사료하시기 바랍니다.

정, 김, 고 姓을 가진 세 분에 대한 제 생각들의 의미를 증상천하님이 너무 교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신 것 같습니다. ㅎㅎ

증산천하님의 댓글

증산천하
2019-07-11 23:53
저는 인용한 것에서는 ~라고 한답니다의 의미를 부쳤으며
파노라마로 느꼈던 것들이 실제 기록 되어진 것으로 확인이 된것은 나중인데
 그것에것에 대해선 인용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그럴때마다 신도란 이렇게도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상한 쪽으로 생각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아는것도 없고 갈 수록 상제님을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어려운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제님 도를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지금까지 제 공부 스타일 이었으니
그런 사람인가보다 하시고 여여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은 정중히 사양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찾아 공부 하실것을 다시 한 번 부탁 드립니다.

제가 글을 쓰게된 것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인가보다 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의문의 답은 각자 알아서 찿아 가시고 그러다보면 그 정성만큼 길도 열어 주시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증산천하님의 댓글

증산천하
2019-07-12 01:53
범증산 밴드방에7월11일에  올라온 낭만신선님의 글 입니다.
낭만신선님께서 이 곳에 글을 올리지 않으시는데 제가 허락 없이
복사를 해왔음을 먼저 사과 드립니다.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 하며 원치 않으시면 삭제 하도록 하겠습니다.

ㅡ김수부님 능소 조성에 관한 비사(秘事)ㅡ

반갑습니다.
김수부님에 관한 소식들을 언제나 가장 먼저 여러 도생님들께 알려드리고자하는 낭만신선입니다.

오늘 다소 이렇게 거창한 이름을 붙인 이유는 관심을 가지고 모두들 제 글을 읽어 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한 분 한 분 개별적으로 충분히 설명드려야 함에도 저의 물리적 한계로 이렇게 게시판처럼 모든 분들께 공지글로 올리게 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전해 드리는 내용을 잘 참고하셔서 도생님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고 좋은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우선 지난 일요일에 김수부님 능소의 비문을 수정하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김수부님 능소의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김수부님 존함(金 末順)중 한 글자(末)가 처음부터 그만 잘못 ‘未’자로 석각이 된 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 다른 교단 관계자분의 의혹제기로 이 밴드의 방장이신 전 도생님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본인이 쓴 『범증산종단사』의 책에도 틀린 글자로 사진이 올라가 있으니 몇 달 뒤 최종본이 나오기 전까지 가운데 틀린 글자를 고쳐주시면 어떻겠느냐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달리 손을 쓰질 못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잘 됐다 싶어서 저는 얼마 후 고창으로 가서 능소를 조성하신 어르신을 찾아뵙고 이일을 상의 드리게 됐습니다.
다행히 허락을 받은 후에 추후 일을 고심하던 차 마침 알고 지내던 분을 통해 상제님 신앙을 하는 분 중에 석물을 다루시는 도생님이 있다하여 그 분을 소개받게 됐습니다.
그 후로는 글 서두에 소개하였듯 물흐르듯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 며칠전 일요일에 드디어 여러 도생님들을 모시고 무사히 함자를 교정하는 작업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사진참조)

이 일을 하면서 보니 비석의 앞, 뒷면 모두에도 작은 글씨로 김수부님의 존함이 동일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웬걸 모두 원래대로 끝 말(末)자로 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모두 황당해 하였습니다. 석물 작업을 하시는 도생님은 워낙 이런 일에 익숙해 있다 보니 이 계통에 있으면 한, 두 글자씩 틀리는 이런 일들이 흔히 있는 일이라 하셨지만, 참석한 많은 사람들 역시 보는 눈이 있는지라 같은 글자를 비석 전, 후면에 여러번 동일하게 ‘末’로 새겨놓은 걸 확인하고는 그러면 어떻게 그것도 가장 중요한 앞면의 큰 글자는 ‘末’자와 달리 혼동하여 ‘未’자로 오기를 할 수 있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참석한 사람들이 서로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김수부님 능소에 관한 일들은 지금까지 모두 알 수 없는 약간은 신비한 면이 있었기에 지금부터 그 얘기를 제가 아는 데로 직접 들은 데로 기억을 떠올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김수부님을 처음 알게된 건 1997년 추석때입니다. 1992년부터 1994년 봄까지 대전의 모교단에 잠깐 다니다가 그만두고 나와서 방황하다 우연히 동곡서원 이효진 선생님이 펴내신 책들을 읽고 전화를 드려 이효진 선생님을 저의 첫 스승님으로 모시고 동곡에서 8개월가량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제가 공부하는 집으로 오셔서 오늘 치성이 있다고 하시며 원평장에 가서 약간의 제물을 준비하여 그날 저녁에 선생님이랑 둘이서 조촐하게 치성을 모셨습니다. 치성이 끝나고 “오늘이 무슨 치성입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오늘이 음력 10월 8일 김수부님 탄강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순간 김수부님이라는 말에 놀라 그런 분도 계시냐며
자세히 여쭈었더니 이집이 옛날 김형렬 성도님 집이고 김수부님도 어릴 때 부터 자란 집이고 선화하신 곳도 이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김수부님 묘소가 있냐고 여쭈었더니 바로 뒷산 어디에 있다고 하셔서 다음날 찾아 올라가서 참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은 마치 일반인의 무덤처럼 작고 초라하여 잡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고 오직 이곳이 김수부님 묘소임을 알려주는 것은 나지막한 비석에 새겨진 흥덕관음지묘라는 여섯 글자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가끔씩 동곡에 갈 일이 있으면 혼자서 참배드리곤 했는데 2009년인가 2010년 무렵쯤 참배를 갔더니 갑자기 김수부님 묘소가 안보여서 하루종일 그 일대 산을 돌아다니다 못찾고 내려와서 그때부터 주변의 아는 선생님이랑 도반형님들께 물어보아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또 가보아도 역시나 못찾고 헤메다 생각하기를 틀림없이 김수부님이 어디로 옮겨 가셨으면 제비산으로 가셨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그해 늦가을 아는 도반형님이랑 동곡마을 입구 삼거리부터 천천히 이슬을 헤치며 찾아보다 우연히 지금의 제비산 자락에 처음보는 조그만 묘가 하나 있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묘는 비록 작지만 터가 엄청 너르고 주변의 지세가 예사롭지 않아서 일단 도반형님이랑 삼거리 슈퍼로 달려가서 주과포를 준비하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다음해 봄에 다시 가보니 봉분이 엄청 커져있고 뒤쪽으로 나즈막히 언덕이 둘려져 있었고 또 다음해 가보니 완전히 상석이랑
큰 비석까지 완연히 능소로 조성되어 있어서 기념석 아래에 있는 전화번호로 급히 전화를 드려 고창으로 달려가서 김수부님의 능소가 이장된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대략적인 사연을 말씀드리자면 아마도 김수부님께서 이른 나이에 처녀의 몸으로 선화하셔서 그런건지 상제님의 도수에 의해 그러신지는 몰라도 처음 묘소가 있던 곳이 그동네 백씨 문중의 땅이어서 이효진 선생님 계실 때부터 이장을 해갔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옛날 김수부님 묘소를 지키고 벌초도 하고 해마다 김수부님의 탄강치성과 화천치성을 조용히 지내온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김수부님의 능소를 지금의 제비산 자락으로 이장한 고창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분은 어릴 때부터 동곡에서 자라셨는데 김형렬 성도님의 집 골목길 바로 앞집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그분의 어머니께서 그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안하는데 해마다 김수부님의 탄강과 화천치성을 모시고 그 치성음식을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셨답니다. 그래서 고창 선생님도 여섯 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김수부님 치성에 자신도 모르게 그냥 함께 했는데 그 어머님께서 연세가 들어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하신 말씀이 이 김수부님 치성을 계속 이어가 달라는 부탁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일이고 어머니의 유언이기도 하여 지금까지 몇십 년을 혼자서 가족분들과 조용히 김수부님을 모셔 오셨는데 김수부님의 능소를 이장하기 몇 년 전부터 꿈으로 어느 분이 나타나셔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알 길이 없어 기도를 드리고 심고를 계속드렸더니 어느날 김수부님의 능소를 이장하라고 하는 듯한 현몽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분의 사모님도 또한 현몽으로 지금의 능소자리를 보여주시어 받으셨다 합니다.

그렇게하여 두 내외분이 김수부님 능소자리를 찾으러 동곡으로 들어오다 마을 입구에서 우연히 아는 친척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오늘 김수부님 능소자리를 보러 왔다고하니 그러냐면서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마침 이 동네에 지금 돈이 당장 필요해서 땅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소개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소개로 땅임자를 만나 그곳으로 가보니 그곳이 마침 고창 사모님이 현몽으로 받은 그곳과 많이 일치하여 다행히 지금의 능소자리의 좋은 터를 사 김수부님의 빈약한 묘소를 이전하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야기가 길어서 먼저 전편을 올려 드립니다.
조만간 또 새로운 흥미진진한 뒷편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하오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를 바라면 끝으로 한가지 공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렇듯 김수부님에 관한 일들을 제가 겪어 오면서 보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도의 손길이 인도하심에 따라 자연스럽게 무위이화로 이루어 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 한사람이 나서거나 무언가 하나를 만들어 사람을 모아서가 아니라 그때 그때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일이 생기고 지나고나면 사라지고...

지금까지는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거라는 느낌을 많이 받고 저 역시도 이제는 모든 분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공감대가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분들과도 일치하고 있어서 그동안 미리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김수부님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라도 함께 하고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우선 그런 분들과 함께 조만간 만나서 글로는 다 못한 부분들을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 김수부님의 함자가 아닐 미(未)에서 끝 말(末)자로 바뀐 일로 인해 - 김수부님께는 너무나 죄송한 일이 되었지만 - 이 일을 계기로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신 여러 도생님들과 여러분 모두와 함께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다음 주까지는 날짜와 장소를 정해 후반부 글과 함께 다시 공지를 올리고자 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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