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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증산도 역사의 실체 8부 (월간 천지공사 제26호)

쾌도난마
2022-03-30 23:32 435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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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전 (증산도 종정) 저술 「관통 증산도」에서 홍범초를 '연원 왜곡자'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자'로 몰아 '개인신앙으로 뛰어들어' '사설(邪說)을 조작' '난법의 대표적 인물'로 혹평]

[운산과 홍범초의 해후]

운산이 신묘(辛卯1951)년 가을에 대법사를 떠난 지 23년 만에 증산교회 교인과 접촉한 것은 갑인(甲寅1974)년 봄에 그의 아들 경전과 함께 홍범초가 세운 예산 교당을 찾은 것이 처음이다.

홍범초는 교단의 원로로부터 운산이 대법사 초기에 유공한 분인데 출교를 당하여 한을 품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당시 홍범초는 증산종단의 연합운동에 몰두할 때이어서 교단 간에 장벽을 허물고 친목하는 마당에 운산이 유위한 인물이라면 그의 한을 풀어주고 교단의 발전에 공헌케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홍범초는 운산이 출교전에 친분이 두터웠던 이영의 아들 이재웅(李在雄)이 대전 대사동 운산의 집에 가는 편에 자기의 뜻을 전하게 하고 다시 편지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운산이 예산 교당을 찾게 된 것이다.
 
운산이 인사후에 과거의 일을 술회하면서 대법사의 창립주 이상호, 이정립의 인격을 인신공격에 가깝게 헐뜯고 대순전경의 여러 장절이 신빙성이 없다는 말에 그의 양식을 의심하게 되었다. 설령 이상호 이정립의 인격에 흠이 있다 하더라도 운산의 말은 너무 박절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순전경의 권위까지 부정하고 무엇을 바탕으로 일을 하려는 분인가 그의 양식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운산의 당치않은 연원주장과 홍범초의 비판]

홍범초는 예산에 온 안운산이 뜻밖에 연원주를 자처하는데 놀란데다 연비이니 연원주를 쫓으라는 논변(論辯)에도 수긍할 수 없었다.
홍범초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1년전 기축(己丑 1949)년에 15세의 나이로 모친(金洪玉)을 따라 도문에 들어 온 이래 안운산이 연원주라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모친이 같은 마을(충남 천원군 목천면 농계리)에 사는 최정봉(崔正鳳 - 생존하여 증산교 본부에 다니고 있는 분)으로 부터 도를 받은 후 고난에 찬 6.25를 겪는 동안 부모님을 따라 5남 1녀의 온 가족이 모두 신도가 되었다.

김봉렬(본지 편집장)의 '증산도 본부 간부들에 의한 납치 및 폭행 사건의 전말」에 ‘홍범초교수가 11세대부터 안운산종도사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자랐으며 안운산종도사로부터 도를 전수받았다'는 말이 있는데 11세 때라면 그의 모친조차 입교하지 않은 해이다.

무엇을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며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무슨 도를 어떻게 전수했다는 말인지 구체적으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홍범초의 형 홍성찬은 그의 바로 위 되는 형이고 그때 같은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했기 때문에 홍범초의 경우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운산이 예산교당에 왔을 때 홍범초는 운산에게 '교인이 자기에게 도를 전해 준 연원주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지만  만일 연원주가 성훈(聖訓)에 어긋나는 주장을 했을 경우에는 따를 수 없다'고 말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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