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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공부하는 방법3

칠현금
2019-09-27 19:13 2,423 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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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말했다 : ≪대학(大學)≫은 하나의 비어 있는 상자(腔子)이니, 지금 가르침을 메워서 저것을 채워야 한다. 예컨대 저 격물(格物)을 말한 것에는 자신이 모름지기 격물(格物)한 뒤에 가르침을 메워서 저것을 채워야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함을 붙잡는 것도 또한 그렇다. 단지 비어 있는 껍질만 읽을 것 같으면 또한 보탬이 없는 것이다.(又曰, 大學是一箇腔子, 而今却要塡敎他實. 如他說格物, 自家須是去格物後塡敎他實, 著誠意亦然, 若只讀得空殼子, 亦無益也.)

 

≪대학(大學)≫을 읽는 것이 어찌 저 언어(言語)를 봄에 있겠는가? 바로 이 마음에 어떠한가를 징험하도록 함이니, 마치 호색(好色)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취(惡臭)를 미워하듯이 함을 내 마음에 시험하여,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함을 과연 이와 같이 할 수 있는가, 한가히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을 함이 이 과연 여기에 있는가 하여,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함이 있으면, 용맹하게 분발하고 뛰어 일어나기를 그치지 않아야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희망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이와 같이 함을 알지 못하면 책은 책으로, 나는 나로 그칠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讀大學, 豈在看他言語. 正欲驗之於心如何, 如好好色, 惡惡臭, 試驗之吾心, 果能好善惡惡如此乎. 閒居爲不善, 是果有此乎, 一有不至, 則勇猛奮躍不已, 必有長進. 今不知如此, 則書自書, 我自我, 何益之有.)

 

또 말했다 : 나는 일생(一生)에 다만 뚫어지게 이 문자(文字)만을 보고 이전의 현인들이 미처 이르지 못한 데를 깨달았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이 ≪통감(通鑑)≫을 짓고, ‘평생(平生)의 정력(精力)을 다 바쳐서 이 책에 두었다.’고 했는데, ≪대학(大學)≫에 있어서 나 또한 그러하다. 먼저 이 책을 반드시 통달하여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又曰, 某一生, 只看得這文字透, 見得前賢所未到處. 溫公作通鑑, 言平生精力盡在此書, 某於大學亦然, 先須通此, 方可讀他書.)

 

또 말했다 : 이천(伊川)이 옛 적에 사람을 가르치실 적에 먼저 ≪대학(大學)≫을 보게 하셨는데, 그 때에는 해설(解說)이 없었지만 지금은 주해(註解)가 있어서 큰 단락을 깨치는데 밝고 명료하니 단지 자세히 보는 것에만 달려 있다.(又曰, 伊川舊日敎人, 先看大學, 那時未解說, 而今有註解, 覺大段分曉了, 只在仔細看.)

 

또 말했다 : ≪대학(大學)≫을 볼 때에는 우선 장(章)을 따라서 이해하여야 한다. 먼저 본문(本文)을 생각하여 알고자 하고, 다음에 장구(章句)를 가지고 본문(本文)을 해석하고, 다시 혹문(或問)을 가지고 장구(章句)를 참고(參考)해야 한다. 모름지기 한 강령을 기억하여 얻은 것을 따르면서 반복하여 깊이 연구하여 마음 속에 깊이 젖어들기를 기다려야 하니, 이미 단락(段落)을 따라서 깨우쳤으면 다시 통합(統合)하여 지나 간 것을 새로 찾아서 보아야 한다.(又曰, 看大學, 且逐章理會, 先將本文念得, 次將章句來解本文, 又將或問來參章句. 須逐一令記得, 反覆尋究, 待他浹洽, 旣逐段曉得, 却統看溫尋過.)

 

또 말했다 : ≪대학(大學)≫이라는 한 책에는 정경(正經)이 있고, 장구(章句)가 있고, 혹문(或問)이 있으니, 보아오고 보아가면 혹문(或問)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장구(章句)만 보아도 곧 될 것이고, 이렇게 오래하면 또 단지 정경(正經)만을 보면 될 것이고, 다시 오래하면 자연히 한 권의 ≪대학(大學)≫이 내 가슴속에 있어서 정경(正經) 또한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는다면 또한 내가 근저로 한 것을 보고도 드러내지 못할 것이고, 성현(聖賢)의 허다한 공부(工夫)를 쓰지 않는다면 또한 성현(聖賢)이 근저로 한 것을 보고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又曰, 大學一書, 有正經, 有章句, 有或問, 看來看去, 不用或問, 只看章句便了, 久之, 又只看正經便了, 又久之, 自有一部大學, 在我胸中, 而正經亦不用矣. 然不用某許多工夫, 亦看某底不出, 不用聖賢許多工夫, 亦看聖賢底不出.)

 

또 말했다 : ≪대학(大學)≫에 본문(本文)을 해석한 것이 상세하지 못한 것은 혹문(或問)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였으니, 우선 처음부터 구절을 따라서 이해하여 통하지 못하는 곳에 이르면 보아야 한다. 혹문(或問)은 바로 주각(註脚)의 주각(註脚)이다. 내가 글을 해석함에 너무 많아서는 맞지 않고, 또 우선 배우는 이들을 대비하는 수준으로 의문(疑問)을 설명한 것을 저기에 말했으니, 배우는 이들이 보기 쉽도록 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만 ‘내가 설명한 ≪대학(大學)≫ 등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다하도록 간략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이 일은 크게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학문(學問)을 함에 단지 수긍 하는가 수긍하지 못 하는가 만을 따질 뿐이니, 저들이 만일 이 속으로 향하기를 수긍하지 않는다면 간략해도 또한 생각을 다하여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저들이 만일 이와 같이 하기를 수긍한다면 자연히 재미를 두어서 더욱 상세할수록 더욱 재미가 있을 것이다.(又曰, 大學解本文未詳者, 於或問中詳之, 且從頭逐句理會, 到不通處却看. 或問, 乃註脚之註脚. 某解書, 不合太多, 又先準備學者, 爲他說疑說了, 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了. 人只說某說大學等, 不略說使人自致思, 此事大不然. 人之爲學, 只爭箇肯與不肯耳, 他若不肯向這裏, 略亦不解致思, 他若肯向此一邊, 自然有味, 愈詳愈有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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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27 19:22
사람이 다니는 통로를 길이라고 한다면
도에 드는 길에서 대학은 고속도로와 같으니,
다니기에 쉽도록 잘 갖추어졌다는 말이다.

주문공의 말이 가히 틀리지 않을 것이니,
묵묵히 체득함에 힘쓰야 할 뿐이다.

이로써 正과 私, 善과 邪가 날이 갈수록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니,
이는 막힌 자와 트인 자의 분별이 있기 때문일 뿐이어서
달리 다른 까닭이 없다.
뜻이 바르게 서는 자는 막인 곳으로 가려하지 말고,
사특함이 드러나는 곳에 휩쓸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27 19:24
내가 하는 것은
단지 이정자의 뜻을 따라 밝히는 것일 뿐이고,
여러 성현의 박학을 두루 통하는 것은 후학의 몫이다.
이를 통하여 남조선 배를 타는 신명은 저절로 맞이하게 될 것이니,
처음에는 어렵게 여겨져도 그 신명들의 호응이 있게 되면
쉽게 통달함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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