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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의 - 문왕과 후비의 교화

칠현금
2019-09-09 12:45 3,687 12 0 0

본문

11. 문왕과 후비의 교화
 
<易・解・初六>에 말했다 : 강유가 사귐에 의로워서 허물이 없기 때문이다.(小象 : 剛柔之際, 義无咎也.) ≪詩經・關雎≫에 말했다 :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다.(窈窕淑女, 君子好逑.)
 
「모서(毛序)」에 말했다 : 「관저」는 후비의 덕을 노래한 것으로 풍화(風化)의 시초이니, 온 세상을 가르쳐 부부를 바르게 하는 까닭이 있다. 그러므로 시골사람에게도 쓰이고, 나라에도 쓰인 것이다.(關雎, 后妃之德也. 風之始也, 所以風天下而正夫婦也. 故用之鄕人焉, 用之邦國焉.)
 
이는 문왕과 태사(太似)가 하늘이 정한 배필임을 말한 것이니, 태사(太似)가 사특함이 없이 정숙함에 문왕의 후비가 되었음을 말한 것으로 그 본보기가 됨이 시골과 온 나라에 통용되었음을 말한다.
 
 
≪詩經・思齊≫에 말했다 : 과처(寡妻)에게 모범이 되어 형제에까지 이르고, 집안과 나라를 다스렸다.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
 
이는 문왕이 성인인 이유를 말한 것이니, 문왕의 큰 덕이 후비에게 모범이 되고, 이어서 후비의 덕이 형제에게 이르게 되어 집안이 가지런해졌으니, 이러한 도리가 곧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임을 말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보면, 아내는 한 집안의 가장 절실함이고, 후비는 한 나라의 가장 절실함이니, 온 세상을 다스리는 도 또한 여기에서 시작될 뿐임을 알 수 있다. 「관저(關雎)」와 「사제(思齊)」는 문왕이 성인인 까닭의 처음과 마침이다.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했다 : 이 시의 서(「毛序」)에 이르기를 “문왕이 성인(聖人)인 까닭인 것이다.”라고 했는데, 설명하는 사람은 문왕의 세상은 어진 후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문왕이 그 성덕(聖德)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후비가 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또 문왕이 몸소 교화함에 근본 함이기 때문에 시인이 ‘과처(寡妻)에게 모범이 되었다’고 하여 문왕의 덕이 침실(閨門)에서 모범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침실(閨門)이 바르게 됨이 다음에 형제에게 미치고, 이로써 집안과 나라를 다스림에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그 근본은 모두 문왕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맹자는 이 시를 들어서 제(齊) 선왕(宣王)에게 일러주면서 단정하여 말하기를 “이 마음을 들어 다른 곳으로 넓혀 행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문왕은 모든 사람을 각자 하나하나 교화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자신을 닦았는데 그 효과가 집안과 나라에서 저절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이러한 때에 맞았으니, <주남周南・갈담葛覃>에 말한 바의 후비(后妃)가 몸소 검약하고 절용(節用)하는 덕이 있었고, <주남周南・권이卷耳>에 말한 바의 음험하고 치우쳐 사사로이 아첨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주남周南・인지지麟之趾>에 말한 바의 자손(公子)들이 모두 믿음이 있고 돈후하였으며, <소남召南・하피농의何彼穠矣>에 말한 바의 왕희(平王의 손녀) 또한 엄숙하고 화락했으니, 이러한 것은 교화가 집안에서 행해진 것이다. <주남周南・토조兎罝>에서 말한 온 숲속의 장부들이 훌륭한 덕을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주남周南・여분汝墳>에서 말한 여수(汝水)의 제방에 부인이 바른 도리로 지아비를 권면했으니, 이러한 것은 교화가 나라에서 행해진 것이다. <요전堯典>에서 말한 것이 하나의 준칙을 낸 것과 같음을 보이니, 이것은 제왕이 도를 같이 하는 때문일 것이다.(此詩之序曰, 文王所以聖也, 說者, 謂文王世有賢妃之助, 故能成其聖德. 然后妃之所以賢, 則又本于文王之躬化, 故詩人歌之曰刑于寡妻, 言文王之德儀于閨門也. 閨門正矣, 次及于兄弟, 以治于家國, 無不正焉, 其本皆自文王之身始. 孟子擧此詩以告齊王, 而斷之曰, 言擧斯心加諸彼而已. 文王非人人化之也, 修吾身於此而其效自形於彼, 故當是時內而后妃有躬儉節用之德, 無險詖私謁之心, 公子皆信厚, 王姬亦肅雍, 則化行於家矣. 中林武夫莫不好德, 汝墳婦人勉夫以正, 則化行於國矣. 視堯典之言若出一揆, 此帝王之所以同道歟.)
 
「사제」에서는 문왕이 성인인 까닭을 알 수 있고, 「갈담」에서 후비의 근본을 알 수 있고, 「권이」에서는 후비의 뜻을 알 수 있는데, 「인지지」에서 이러한 덕이 자손과 종족에게까지 두루 교화가 미치었음을 볼 수 있으니, 「모서毛序」에 “「인지지」는 「관저」의 효험이 응한 것이다. 「관저」의 교화가 행해지면 온 세상에 예가 아닌 것을 범하는 일이 없어져 비록 쇠락한 세상의 공자(公子)일지라도 모두 믿음이 진실하고 도타와 인지(麟趾)의 때와 같아진다.”(麟之趾, 關雎之應也. 關雎之化行, 則天下無犯非禮, 雖衰世之公子皆信厚, 如麟趾之時也)라고 했다. 「하피농의」에서는 문왕과 후비 태사의 교화가 유전하는 세월 속에서도 쇠락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토조」에서는 아울러 현인이 많아짐을 또한 알 수 있고, 또한 「여분」에서는 도와 교화가 널리 행해짐을 알 수 있으니, 「모서毛序」에 “「토조」는 후비의 교화를 노래한 것이니, 「관저」의 교화가 행해지면 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현인이 많다.” (兎罝, 后妃之化也. 關雎之化行, 則莫不好德, 賢人衆多也.)라고 했다. 이는 ≪요전≫에서 이른바 “하늘과 땅에 이르렀다”(格于上下)고 함과 “온 백성이 변하여 화락하였다”(黎民於變時雍)고 하는 것이니, 그 공효가 요임금이 낸 준칙과 같은 것이다.
 
 
≪易・解≫에서 말했다.
 
우레와 비가 일어남이 해(解)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잘못된 자를 풀어주고 죄를 용서한다. (大象 : 雷雨作, 解, 君子以赦過宥罪.)
 
해(解)는 어려움에서 풀리는 때인데, 온 세상이 크게 풀리는 계제에는 새로움이라는 의미가 드러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백성을 새롭게 함은 곧 <대학>의 신민(新民)의 도인 것이다.
 
정자가 말했다 : 잘못한 과실은 사면해도 되지만, 죄악을 사면해 준다면 의롭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너그럽게 할 뿐이다. 군자가 우레와 비가 일어나 풀리는 상을 살펴보고, 그 발육함을 체득하여 은혜와 인(仁)을 베풀고, 그 풀어 흩어짐을 체득하여 너그러움과 풀어줌을 행한다.(過失則赦之可也, 罪惡而赦之則非義也, 故寬之而已. 君子觀雷雨作解之象, 體其發育則施恩仁, 體其解散則行寬釋也.)
 
성재양씨(誠齋楊氏)가 말했다 : 천지와 만물이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에 우레와 비가 일어나고, 군자와 백성이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에 사면하고 용서하는 일이 시행된다.(天地與物爲新, 故雷雨作 ; 君子與民爲新, 故赦宥行.)
 
<解・九四>에 말했다 : 수염과 엄지발가락을 풀어야 벗이 와서 믿음을 나눌 것이다.(九四, 解而拇, 朋至斯孚.)
 
멀리 있는 비천한 자가 호응하여 사귐에 허물이 없으면 다른 부류는 더 논할 것이 없으니, 그 구제하는 바가 넓다. 천문으로 말하자면, 천계성이 제 자리에 나타나 아래에서 기뻐하는 상이 되니, 창룡칠수의 마지막 꼬리에 해당하는 기성(箕星)이 천계(天鷄)에 해당하는데, 천계성이 움직이면 반드시 사면령을 내린다고 한 것(天鷄星動, 必當有赦, 由是王以鷄爲候.)이 이에 해당한다.
 
<解・六三>에 말했다 : 짊어져야 하는데도 올라타서 도적을 불러 오기에 이르렀다.(負且乘, 致寇至.)
 
자리가 아닌 것을 올라탔기 때문에 도적을 불러왔으니, 그 허물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성인이 “누구를 허물하겠는가?”라고 했다.
 
정자가 말했다 : 소인이 짊어져야 마땅한데 도리어 올라탔으니 빼앗는 도둑을 불러오는 것이다. 어려움이 풀리는 때에 소인이 지위를 훔치면 다시 도적이 오는 것이다.(小人宜負而反乘, 當致寇奪也. 難解之時而小人竊位, 復致寇矣.)
 
성재양씨(誠齋楊氏)가 말했다 : 조고가 진나라를 참람하게 하여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오게 하고, 진승과 오광이 오고서 조고와 진나라가 참람하게 망했고, 조충(趙忠)과 장양(張讓)이 한나라를 천단하여 동탁을 오게 했고, 동탁이 오고서 두 내시와 한나라가 함께 멸망했다. 도둑이 이렇게 빼앗아 가니,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趙高僭秦, 以致勝廣, 勝廣至, 而高與秦偕亡 ; 趙忠張讓擅漢以致董卓, 卓至, 而二豎與漢俱滅. 盜斯奪之, 可不大懼也哉.)
 
<解・九二>에 말했다 : 사냥하여 세 마리 여우를 잡는다.(田獲三狐) <解・上六>에 말했다 : 공(公)이 높은 담 위에서 새매를 쏘니, 잡게 됨에 의롭지 않음이 없다.(上六, 公用射隼於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장재(張載)가 말했다 : 의로움을 잊으면 탐욕스럽기 때문에 새매로 비유한 것이다.(忘義而貪, 故以喩隼.)
 
성재양씨(誠齋楊氏)가 말했다 : 대부분의 어려움이 이미 뚫렸다면 무엇을 먼저 함이 마땅한다? 기강보다 급한 것이 없고, 또 기강보다 급한 것이 있으니, 법도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또 법도보다 먼저 할 것이 있으니, 소인을 제거하는 것이 이것이다. 곽광이 상관걸(上官桀)과 함께 무제의 후사를 위탁받았지만 병길(丙吉)・위상(魏相)・홍공(弘恭)·석현(石顯)이 선제(宣帝)의 조정에 섞여 있는 것은 어려움이 없으면서 많은 어려움이 시작된 때이다. 그러므로 해(解)의 때를 만나 구이는 여우를 잡고자 하고, 육삼은 도적이 옴을 경계하고, 구사는 엄지발가락을 풀고자 하고, 육오는 소인을 물러나게 하고, 상육은 새매를 쏘고자 한다. 무릇 여우란 소인의 요사함이니, 홍공과 석현이 이것이다. 엄지발가락은 소인의 천함이니, 등통(鄧通)과 한언(韓嫣)이 이것이다. ‘준(隼)’은 소인으로 사나운 자이니, 두헌(竇憲)과 양기(梁冀)가 이것이다. 짊어져야 하는데도 올라타는 자는 소인으로 참람한 자이니, 왕망과 동탁이 이것이다. (多難旣徹, 則宜何先? 莫急於紀綱, 而又有急於紀綱 ; 莫先於法度, 而又有先於法度, 去小人是也. 霍光上官並受武之託, 丙魏恭顯雜居宣之朝, 則是无難多難之始也. 故當解之世, 九二欲其獲狐, 六三戒其致寇, 九四欲其解拇, 六五欲其退小人, 上六欲其射隼, 夫狐者, 小人之妖, 恭顯是也 ; 拇者, 小人之賤, 通嫣是也 ; 隼者, 小人之鷙, 憲冀是也 ; 負乘者, 小人之僭, 莽卓是也.)
 
양산래씨(梁山來氏)가 말했다 : 새매는 산림에 서식하니, 사람이 모두 쏘아서 얻는 것이고, 왕궁의 높은 담장 위에 서식하는 것이라면 ‘성(城)에 사는 여우와 사단(社壇)에 사는 쥐’와 같아서 기대는 바가 있으니, 사람이 감히 쏘지 못한다. 대체로 육오의 소인은 바로 환신과 궁첩이고, 상육의 새매는 외척인 소인이니, 왕망의 무리가 이것이다.(隼棲于山林, 人皆得而射之, 惟棲于王宮高墉之上, 則如城狐社鼠, 有所憑依, 人不敢射矣. 蓋六五之小人, 乃宦官宮妾 ; 上六之隼, 則外戚之小人, 王莽之類是也.)
 
「관저」와 「사제」의 두 편을 살펴보면 문왕과 후비의 덕이 천하에 교화를 행함이 후세에 오랫동안 그치지 않고 이어짐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 허물됨이 없음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두루 미치기에 이른 것이니, 시작과 마침이 한결같음을 독자가 체현하여 알게 되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비록 환난이 풀리는 때라고 해도 천지가 베푸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화(禍)와 복(福)일 뿐이니, 한 마음의 사사로움을 푸는 자는 선에 머물 수 있어서 복이 이르고, 간특한 자는 재앙을 불러들일 뿐이니, 애써 제거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질 뿐이다. 때를 기다려 소인이 제거됨을 또한 성인이 허락한 말에 있으니, 고염무(顧炎武)의 시에 “무소의 뿔에 불붙이고 선황의 등촉을 짊어졌으니, 새매를 쏘아 의로운 선비의 마음을 다하리라.”(然犀久荷先皇燭, 射隼能忘俠士心.)라고 했으니,  대개 간특한 자를 제거하고자 하는 뜻이 이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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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2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09 13:03
선과 악, 화와 복은 한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니,
정자가 "사이와 틈이 없어야 한다"고 했고, 또 "한 터럭만큼의 틈도 없어야 한다."고 했으니,
이는 그 차이가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말함이다.

협소하기 때문에 쉽게 없앨 수 있지만, 대개 집착하는 바가 가리고, 가리는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 도적을 불러오는 것이다.

특별히 해괘의 말을 가지고 설명을 더하였으니,
한 마음의 막힘과 얽매임을 풀지 못하는 자는 다름 아닌 사특함을 버리지 못함이어서 화가 이를 것이고,
푸는 자는 바로 도에 가까워지니, 천하의 길흉과 때의 결단을 저절로 알 것이다.

간사함과 사특함이 문턱을 넘는 것이 눈 깜작할 사이이고,
그 부류도 각기 천차만별하니,
스스로를 두려워 하는 자는 도에 들고,
남을 두려워 하는 자는 벗어나지 못하여 결국 제거될 것이니,
천명이 이러함은 나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라
바로 상제께서 이미 성인을 통하여 전한 말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글이 곧 상제께서 전하시는 명이 함께 하는 것이니,
전함을 받는 자는 성공하고, 간특한 자는 도적을 불러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11 23:00
혹 어떤 부류는 창교주가 문왕의 도수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그 창교주가 바라지 않던 교설을 지어내어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무망의 재앙이니,
후인이 지나간 사람에게 재앙을 입히는 경우에 해당하여
그 사특함이 자신은 막론하고 그 창교주까지 어지럽히게 만드는 경우이다.

또 어떤 부류는 창교주 자신이 문왕의 도수의 주인공인양 한다.
하지만 문왕의 문왕됨과 같은 덕과 교화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황탄한 일인가.

문왕의 문왕됨을 가르치는 자는 없고 그 도수를 자임하는 자만 있으니.
이것이 짊어져야 하는데 올라타서 도적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11 23:07
한 도적이 일어나고 그 도적에게 아첨하는 자가 있다면
그 아첨하는 자는 그것이 믿음이고 충인 줄 알지만
유사 이래 간사한 자는 모두 충을 가장하여
결국 자신도 망하고 그 군주도 망하게 하고 나라도 망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환란이 풀어지는 떄에 간특한 자를 제거하는 것이 시급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역에 이러한 말이 있는 것은
달리 상제께서 말씀하신 바가 없어도 도수로 있는 것이니,
여우를 잡고 새매를 쏘아 잡는 일 또한 필연이다.

그 때는 언제인가?

천계가 제 자리에 있게 되는 떄이니,
바로 '누런 장닭 두 홰 운다'는 그 때일 것이다.
천계성이 소리를 내고, 왕시성이 움직이는 때는
천명이 사특한 자를 거두게 하였으니.
성탕이 히걸을 쫒아낼 때에 이미 그러했고,
이세 황제 호해가 죽던 날도 그랬다.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11 23:14
혹 이러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필연이라고 답했다.


매우 방대한데 언제 다하는가라고 물었다.
내가 쓰는 것보다 읽는 사람은 더 빠를 것이고,
지어내는 도수 풀이 하는 시간에 하고
비결 따위 짜맞추는 시간에 그런 것 안하고 해도 충분하다고 답했다.

또 말했다.
시간은 충분하고, 지금은 바로 시작일 뿐이다라고.

문왕의 문왕됨은 성인됨의 도학의 공부이니,
이는 한 사람의 도수를 맡은 사람이 나오는데 본래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가 그 공부를 통하여 성인됨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
이를 알지 못하는 자는
문왕이라는 두 글자에 대두목이란 각인을 찍어두고 보기 때문에
이 길에 들어서는 것이 어렵고도 어렵다.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11 23:24
때가 바야흐로 성호사서(城狐社鼠)가 득실거리기에 다다랐으니.
때로 정분이 통하여 끼리끼리 모여 당을 지어도
급기야는 아첨하고 모함하는 기질이 발동하기 마련이니.
그 가운데 혹 구제됨을 받는 자는 그 분란에서 떨어질 것이니,
그 무리 가운데서 벗어난다면
필시 신명의 그윽한 도움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어디에 속하지 못함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자가 아니면
남 모르는 공부를 하기 어렵고, 근본적인 도의 체득함에 가깝기도 어렵다.

잡부자작하는 자들은 거의 지각함이 막혀 있기 때문에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것이거나 자신만이 옳다라는 환상의 꿈을 꾸기에만 급할 것이니,
그들의 사특한 말은 곧 막히고 말 것이다.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11 23:39
후한 말에 채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대개 대학자로 알려져 잇으나, 그의 삶은 불운의 연속으로 매우 처참했다.
동탁의 협박에 못이겨 결국 관직에 나아갔는데,
동탁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옹을 통하여 보완하고자 하여 그를 매우 중용했는데,
채옹은 동탁의 그릇됨을 알기에 떠나고자 했는데,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것이기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왕윤이 동탁을 제거함에 사실상 그의 고충은 해결된 것 같았지만,
왕윤이 그를 시기하여 죽이기에 이르렀으니.
천하에 조금의 사사로움이라도 있는 자라면 누굴 믿겠는가?

사람을 모으는 자가 여러 사례를 든 옛 성인의 도의 배움에 나아간 자가 아니고,
또한 그러한 덕을 갖추지 목한 자라면
또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이러한 깊은 도학의 체득함이 없이 단지 우선의 명분만으로
그럴듯한 말로 꾸민다면
그들이 바로 채옹을 죽인 왕윤 같은 자가 아닐 것을 어찌 믿겠는가?

형세가 여의치 못하여 지금 어디에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 한 마음이 나아가는 바가 진실한가? 아닌가? 하는 것의 문제일 뿐이다.
진실로 도에 뜻하는 자는 거짓된 믿음을 믿음이라고 하는 허상을 스스로 벗어던진다면
그 막힌 곳이 뚫리는 밝음을 볼 것이다.

황규진님의 댓글

황규진
2019-09-24 19:22

칠현금님의 댓글의 댓글

칠현금
2019-09-24 19:42

황규진님의 댓글의 댓글

황규진
2019-09-25 19:11

칠현금님의 댓글

칠현금
2019-09-25 20:26
오동나무에 줄을 맨 초미금을 누가 능히 풀 것인가?


채옹이 탄금을 할 때 줄이 끊어졌는데
그 딸인 채문희가 몇번째 줄이 끊어졌느지를 알아맞추자
채옹이 다시 일부러 다른 줄을 끊자
또 채문희가 이를 맞추었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음률을 아는 자라면 저절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니,
때가 되면 아는 자가 나와서 저절로 안다는 뜻이 아니겠소.

또한
오동나무에 줄을 맨 초미금은 누구라도 능히 물 것이다라고 해석해도 될듯.

즉 뛰어냔 인재라면 저절로 풀 수 있다는 뜻입니다.

꼬록님의 댓글의 댓글

꼬록
2019-09-26 18:50
감사합니다.
로그인을 하니 제 이름이 없어졌네요.
저는 황규진이라고 합니다.

인문학의 지평이 환하게 넓어진 느낌입니다.
해석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 미묘하네요^^
칠현금 님 글의 애독자입니다.
계속 좋은 글을 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원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수원나그네
2019-11-20 08:29
채옹의 기운을 증산 상제님께 붙이시고

채문희의 기운을 본좌에게 붙이시고 하여,

증산상제님께서 보신 천지인공사에 증산 상제님이 어느 거시기에게 기운 붙여 쓰신 것을

본좌가 알아보고 거시기하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드시는 것은 왜 일까나...?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아따~ 그러고 보니, 증산 상제님께서 화은당 강이순 거시기에게 고추가 없어 무당들을 불러놓고 잠지 나온다 했던 가 고추 나온다 라고 했다던가 거시기하게 하며 굿을 하게 거시기하는 게 나오더만 이러한 공사를 통해 화은당이 변하여 본좌로 거시기하여 태어나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이런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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